2016년 겨울 제37호
소통과 공감: 인터뷰

‘학문의 경계를 넘나들면서’ 영어로 말하고 글쓰기

모윤숙(기초교육원 강의교수)

기초교육원 모윤숙 교수가 건네는 조언들은 어느 하나도 막연한 응원이나 근거 없는 긍정으로 빠져버리지 않는다. 모 교수의 말이 대개 실제적인 사실과 구체적인 경험에 기반을 두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그에게 영어 말하기 실력 향상에 대한 조언을 구한다고 해보자. 그는 먼저 입 근육의 움직임과 인간 심리 및 말하기 습관을 조목조목 설명해준 뒤, 자신이 몸소 실천해본 비결을 세세히 전수해줄 터이다. 분명하고 명쾌하다. 인터뷰 내내 답변은 그런 식으로 시원시원했다. 모윤숙 교수가 이공계열과 어문계열을 두루 가로지르며 습득한, 풍부한 경험과 폭 넓은 지식들을 함께 들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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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영어2: 말하기’와 ‘대학영어2: 글쓰기’, 실제로 쓰일 유용한 과제들

Q: ‘대학영어2: 말하기’ 강좌에서 프레젠테이션, 그룹토론, 비디오 프로젝트, 발음 연습 등 아주 흥미롭고 다양한 과제들을 내 주신다고 들었습니다. 구체적인 사례를 하나 들어보고 싶어요.

모: 저는 학생들이 들으면 괜찮을 것 같은 YouTube 영상이나 CNN 뉴스를 찾아서 종종 업데이트를 하는데요. 이런 것들을 수업으로 연장하곤 해요. 예를 들면, 스티브 잡스의 스탠포드 대학 졸업식 연설이 있잖아요? 제 수업의 첫 번째 숙제가 바로 자신이 20년 후에 성공해서 그렇게 연설이나 인터뷰를 한다고 상상해보는 거예요. 그리고 이때 꼭 포스터를 만들라고 해요. 저는 우리 학생들이 모두 성공할 거라 믿고 있고, 이런 과제가 학생들에게 어떤 계기가 됐으면 좋겠다고 생각하거든요. 그래서 “포스터를 보관하고 있어라, 나중에 쓸 일이 있었으면 좋겠다”고 말해주죠. 물론 여기서 저는 ‘성공’의 정의를 어떤 분야로 한정하고 있지 않아요. 누군가에겐 성공이 이를테면 ‘좋은 사람으로서의 성공’일 수도 있는 거니까요.

Q: 영어 실력에 도움이 될 뿐만 아니라 그 내용 자체로도 기억에 남는 수업일 것 같아요. 영어 글쓰기 수업의 경우도 궁금해지는데요.

모: 저는 주로 이공계 글쓰기 수업을 하는데요. 이 수업에서는 한 학기에 걸쳐서 논문을 한 편 써요. 학기 초 한 달 정도는 논문 형식을 배우면서 실험 주제를 찾는데, 이게 쉽지 않아요. 실험실을 쓸 수 있는 게 아니기 때문에, 단순하지만 유의미한 결과를 얻을 수 있는 실험을 디자인해야 하거든요.

제 본래 전공이 화학이었던 게 도움이 많이 돼요. 예를 들면 “자하연의 물과 관악산 수원 간 오염의 차이는 어느 정도일까?” 이런 주제가 있을 때, 과학적인 지식이 없으면 이 실험을 어떻게 디자인할지 모르는 거죠. pH나 BOD 그런 거 측정하지 않아도, 물을 하얀 거름종이에 걸러서 얼마나 많은 오염물질이 있는지 무게를 재면 간단하게 실험할 수 있는데 말이죠. 어떤 친구는 향수를 뿌렸을 때 어느 조건에서 오래가나 실험하기도 하고, 또 어떤 친구는 기숙사 물 온도 변화를 조사하기도 하고. 이런 간단한 실험들의 결과를 가지고 논문 형식으로 완성을 하는 게 글쓰기 수업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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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어 잘 하기, 중요한 건 발음이나 문법이 아니야

Q: 다 재미있게 들리면서도 수업 내용의 수준이 참 높은 것 같아요. 학생들이 그러한 과제들을 영어로 말하고 쓰는데 힘들어하진 않나요?

모: 제가 처음에 아주 강조를 하는 게, 말하기에 있어서 말의 질은 내용으로 결정되는 거지, 문법이나 발음은 전혀 중요하지 않다는 거예요. 우리가 외국인이잖아요. “우리의 목표는 말하고자 하는 바를 오해 없이 정확하게 전달하는 것이니까, 문법 오류나 한국식 악센트는 걱정하지 마라. 중요 단어만 늘어놔도 의사소통이 되니까 충분히 문제가 없다.” 그렇게 말해주면 학생들이 수업시간에 조용히 있는 경우는 거의 없어요.

글쓰기는 대체적으로 말하기 싫어하는 성향을 가진 학생들이 선택하기는 해요. 그래도 제가 좀 많이 코미디언이거든요(웃음). 저는 위계를 안 믿는 사람이기 때문에, 아이들한테 항상 “내가 여기 서 있는 것은 먼저 배웠기 때문에 있는 거지, 너희들보다 나은 거 하나도 없어. 그러니까 기죽지 말고.” 이런 식으로 얘기하니까 영어가 문제가 되지는 않아요.

Q: 발음이나 문법보다는 내용이 중요하다고 말씀하셨는데요. 그래서인지 학생들 중엔 “영어 실력 자체가 좋은 학점으로 이어지지는 않는 것 같다”라며 평가방식을 궁금해 하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학생들이 수업을 통해 성취했으면 한다고 생각하시는 목표가 무엇인지 듣고 싶어요.

모: 일단 ‘영어를 잘 한다’고 믿는 것에 오류가 있는 것 같아요. 프레젠테이션을 할 때는 어떤 기준이 있잖아요. 그런데 발음이 좋고 영어가 유창한 친구라고 해서 꼭 그런 걸 잘 따르는 건 아니거든요. 영어 말하기의 목표는 영어 말 잘하기가 아니에요. ‘아카데믹 세팅’이죠. 비판적 사고를 하고, 다른 사람과 함께 의견을 나누고, 내용을 어떻게 풀어나가는지 그런 능력을 보는 거죠.

Q: 영어가 하루하루 더 중요해지고 있는 오늘날, “영어가 어렵다”거나 “영어 실력을 더 키우고 싶다”는 것은 학생들의 오랜 고민거리이자 큰 관심사인 것 같습니다. 영어를 잘 하기 위한 비법을 알려주신다면 어떤 게 있을까요?

모: 제 개인적인 이야기를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저는 영어를 가르치잖아요. 그런데도 월요일 아침 수업은 힘들어요. 영어로 말하는 거는 잠깐만 놓아도 기계에 기름이 안 쳐진 것 같은 느낌이 들거든요. 한국말로 마인드 세팅이 돼 있다가 영어로 전환이 안 된 거예요. 그래서 쓰는 방법이, 집에 가면 바로 내셔널 지오그래픽을 틀어 놓는 거죠. 집중해서 보지 않더라도 듣다 보면 영어로 전환이 되니까. 다큐멘터리의 장점은 표준어를 쓰고 속도가 적절하다는 거예요. 게다가 영어 표현의 수준들이 굉장히 높죠.

또 적극 추천하는 게 있어요. 저는 지하철로 출퇴근하는데요. 매번은 아니더라도 영어로 된 글을 지하철 안에서 작게 소리 내서 읽어요. 창피하다고도 생각할 수 있죠. 근데 배움에 창피함이 어디 있어요. 나이가 들고 나서 영어를 배우면, 우리 혀와 입속 근육들은 한국말만 훈련된 상태잖아요. 영어 훈련을 해주려면 눈으로 읽어서는 안 되는 거죠. 학생들에게 항상 이 얘기를 해요. 소리 내서 읽어라, 단어를 찾을 때도 소리 내서 읽고 들어봐라.

 

모든 것들은 내일을 위한 자산이 된다

Q: 이 인터뷰는 교수님의 수업을 듣고 있는 학생들에게 받은 질문을 토대로 진행되고 있는데요. 그 중에 교수님이 전공을 바꾸셨다는 사실에 대한 질문이 가장 많았습니다. 교수님의 본래 전공이 화학이었다고 하셨죠? 전공을 바꿀 때 어떤 계기나 고민이 있으셨나요?

모: 화학 전공으로 졸업을 하고 그 쪽으로 직장도 다니고 있었는데, 직장 다니면서도 배움에 대한 욕심을 못 끊었어요. 그냥 배우고 싶었어요. 학교 다닐 때도 언어가 좋아서 프랑스어‧스페인어‧영어 같은 언어 수업들을 많이 들었는데, 회사를 다니면서 무료하다는 생각이 드니까 야간에 영어교육대학원을 다닌 거죠. 그러면서 “아, 어차피 우리가 외국으로 공부를 하러 나갈 건데 영어가 중요하겠다, 영어를 하자.” 그렇게 단순하게 된 거예요.

요즘 학생들은 그런 고민 많이 하잖아요. 이걸 하면 밥은 먹고 살 수 있을지 어떨지. 저희 때는 그런 고민을 별로 안 했던 것 같아요. 그냥 자기 좋은 거 하는 거였죠. 그래서 저는 전공을 바꾸면서 큰 고민 없었는데, 학생들은 굉장히 고민스러웠을 거라고 생각하더라고요.

Q: 아마도 진로를 충분히 탐색해볼 시간이 없는 우리나라 학제 상, 전공에 대한 고민을 하는 친구들이 많아서 그런 것 같아요.

모: 제가 영어를 공부하면서 보니까 영어학‧언어학이 참 이과에 가까워요. 언어를 한다는 것은, 뇌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우리 근육과 폐에서는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를 다 보는 거잖아요. 또 소리는 파장이기 때문에 물리학이고요. 제가 학부 때 힘들게 공부했던 것들이 나중에 언어학을 할 때 누구하고도 비교가 안 되는 큰 자산이 되었어요. 그래서 항상 학생들에게 이렇게 말해줘요. “지금 너희들이 하고 있는 것이 나중에 어떻게 사용될지 고민하지 말아라. 지금 열심히 하고 있다면 언젠간 분명 의미 있게 쓰일 거다”하고 말이죠.

Q: 모든 것이 자산이 된다고 말씀하신 게 마음에 와 닿네요. 대학영어를 가르치실 때 언어학 전공이 도움이 되는 경우도 있으시겠죠?

모: 그럼요. 음운론은 특히 그렇죠. 간단한 예를 들자면 “Good Morning” 같은 거. 미국 친구가 “왜 한국 애들은 다 [근 모닝]으로 발음하니?” 그러더라고요. ‘Good’에는 ‘n’이 없는데. 그 때 뒤통수를 딱 쳤어요. 우리는 인식 안 하지만 그게 한국 음운론이거든요. 그 적용을 당연히 영어에서도 할 수밖에 없는데 아무도 인식 못하잖아요. 이런 얘기를 애들한테 들려주면 깜짝 놀라죠. 자기들은 [근]이라고 했지만 [굳]이라고 했다고 착각하는 거예요. 원어민처럼 발음을 할 필요는 없지만 이런 것들 때문에 오해가 일어나면 안 되는데 말이죠. 제가 음운론 전공자기 때문에 그런 쪽으로는 굉장히 많이 도움을 줄 수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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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걸어본 사람으로서, 함께 걸어가는 친구로서

Q: 교수님이 “나는 늘 열려있으니 도움이 필요하면 언제든 연락하라”고 말씀하셔서 인상 깊었다는 언급을 어느 학생에게 들었습니다. 평소 학생들을 대할 때 어떤 마음가짐으로 만나시는지요? 수업 시간 외에도 학생들과 자주 얘기하시는 것 같아요.

모: 네, 자주 얘기하는 편이죠. 졸업한지 3~4년이 지난 친구들도 만나곤 하는데, 저는 그게 너무나도 감사해요. 각자 전공 관련 분들은 당연히 찾아뵙겠죠. 그렇지만 저는 끽해야 한 두 학기를 만났고 우연한 만남이고 한데 말이죠. 몇몇 친구들은 직장에 가서도 연락이 되는데 정말 ‘친구처럼’ 만나요. 그 친구가 “이게 힘들어요” 그러면, “나는 요즘 이게 힘들어, 우리 같이 힘내보자” 얘기하면서.

사실 저는 영어만을 가르치려고 여기 있다는 생각을 안 하거든요. 제가 경험한 바로는 서울대학교에서 학생으로 산다는 게 굉장히 힘들어요. 고등학교까지는 늘 나만 잘났었거든요. 깨져본 적 한 번도 없다가 대학교 왔더니 나는 점점 작아져 보이고 주변은 점점 높아 보이고. 또 털어놓을 데는 없고 하니까 마음의 병이 생기잖아요? 나는 그런 걸 경험해 봤기 때문에, 친구들에게 말해주는 거예요. “너희 과에 계시는 교수님들에게 털어놓기 힘들 경우가 있으면, 나는 친구처럼 들어줄 테니 언제든지 수업 끝나고 찾아오라”라고, 그렇게요.

Q: 마지막으로, 학생들에게 삶 전반에 대한 조언을 해주셔도 좋을 듯해요.

모: 해주고 싶은 말이 두 가지가 있어요. 일단 아이들이 너무 많이 기죽어있는 것 같아요. 뭔가에 쫓기고 있고 뭔가에 바쁘게는 사는데, 딱히 뭐에 바쁜지를 잘 모르는 거 있잖아요. 3학년인데 “앞으로의 계획은 어떻게 되니” 물으면 “잘 모르겠어요” 그러고. 이런 게 너무 안타까워서, 그냥 영어를 가르치는 사람이 아닌 먼저 산 사람으로서, 다들 기죽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고요.

두 번째는, 주변을 좀 살폈으면 좋겠어요. 많은 학생들이 자기가 급하니까 자기 앞밖에 못 보는 것 같아요. 저는 우리 학교의 학생들이 여기저기 곳곳에서 리더로 지낼 거라고 믿고 있는데, 머리만 자라고 마음이 자라지 않은 사람이 되면 안 되잖아요. 양보도 배우고 주변도 보는 그런 여유가 조금 없는 것 같아요. 그게 안타까워서 앞에서 말한 그런 식의 수업들을 하는 거죠.

 

모윤숙 교수가 제일 재미있어하는 과목이라고 말한 심리언어학은 “말의 결과물이 아니라 말의 과정에 대한 것”이다. 그는 이렇게 설명했다. 어떤 소리가 들려올 때, 그 소리가 어떤 지점까지 모호하다가, 어느 순간 갑자기 명확해지는 경우가 있는데, 심리 언어학은 바로 그 과정을 탐구하는 분야라고. 달리 설명하자면 이런 것이다. 아직 의미화 되지 않은 소리자극‧문자자극을 뇌에서 받아들이고 이해하는 복잡다단한 마음의 프로세스, 어떤 모호성이 일련의 과정을 거쳐 명료화되는 언어의 메커니즘. 모 교수는 “우리가 아무렇지도 않게 나누는 대화 속에도 그러한 모호성이 가득하다”고 말했는데, 이는 어쩌면 언어에만 해당되는 말이 아닐지도 모른다. 우리 삶도 무수한 모호성으로 가득하다가, 어느 순간 갑자기 어떤 의미 있는 결과물로 드러날 테니. 우리들 모두가 그러한 삶의 과정 위에 놓여있다는 사실을, 모 교수는 어느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을 것만 같다. 학생들의 미래에 대한 그의 진심 어린 신뢰가 이를 꼭 말해주듯 말이다.

인터뷰 진행 및 원고 작성: 백수향(인문대학 미학과 석사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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